제1장-낙오자와 백작

도쿄, 사계절 중 가장 바쁜 계절인 봄이 막 시작되려는 어느 날. 샤이닝 사무소의 구석진 연습실. 희미하게 햇살이 비치지만, 안의 공기는 싸늘했다.

코코아는 커다란 이어폰을 낀 채 멍하니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흰 건반 위에 얹힌 손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악보 위에는 이미 수차례 고쳐 쓴 흔적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흐르는 시간은 무정할 만큼 조용했다.

“또야…”

조용히 중얼인 그녀의 목소리는 스스로를 질책하는 듯했다. 작곡가로서 샤이닝 사무소에 입사한 지 1년. 하지만 단 하나의 곡도 채택되지 못한 그녀는 이제 ‘낙오자(落ちこぼ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누구도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조용히 퍼지는 시선과 뒷말이 코코아의 존재를 점점 작게 만들고 있었다.

그날도 그녀는 말없이 사무소 구석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전화소리... 낮고 단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일, 예정된 대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맞겨만 주십쇼.”

차가운, 그리고 냉정하기까지 한 목소리. 코코아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려 문에 다가섰다. 문틈 사이로 언뜻 보인 것은 밀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의 옆모습이었다. 눈은 가늘게 떠 있었고,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는 표정이었다.

순간, 코코아는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콰르텟 나이트의 멤버. 영구동토의 나라 실크팔레스에서 온 백작. 완벽한 비주얼과 신비한 분위기로 무대 위에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물. 하지만 지금, 그가 내뱉은 말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의 말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지나치려던 코코아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녀가 조금 더 다가가려는 순간, 카뮤의 시선이 그대로 그녀를 향한다.

“거기, 너. 지금 들었나?”

“…아, 아니요. 전, 그저…!”

코코아가 당황해 고개를 저을 때, 그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따라와.”

그 말은 명령이었고, 코코아는 거부할 틈도 없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게 된다. 도착한 곳은 사무소 내의 어느 조용한 연습실. 카뮤는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고, 코코아는 그 앞에 선 채로 상황을 파악하려 애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었는지. 전부 자백해라.”

“…네?”

“칫, 한심한 계집이로군. 따라와라”

카뮤는 코코아를 협박하는 듯 말했다. 그는 사무소의 빈 사무실로 데려가서는 말했다. 코코아는 충격에 말을 잃었다. 겨우 입을 열었을 때, 그 말은 너무 작아 들리지도 않았다.

“살려주세요...”

카뮤는 대답 대신, 그저 자신의 시선으로 코코아를 꿰뚫듯 바라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선택한 건 아니다. 하지만 너에게 내 비밀을 들킨 이상, 네가 입 다물게 만들 필요는 있겠지.
마침, 이 저택에 메이드를 들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네...? 그게 무슨...!”

“네놈, 들리는 소문으론 제대로 된 곡조차 작업한 적이 없다고 하지? 이 몸이 특별히 작곡가로서 나와 활동할 기회를 주지.”

“네..?? 그건...?!!”

“뭔가? 설마 자신의 일인데도 모르는 건가? 샤이닝이 말하더군 콰르텟 나이트의 멤버 중 한명과 곡을 만들어 우승하지 않으면 즉시 해고랬나?”

코코아는 이전에 샤이닝 사오토메, 즉 사장님께 들었던 말이 있었지만 콰르텟 나이트의 멤버 어떤 누구에게도 다가가 말을 걸 찬스도 용기도 없었고... 그저 해고 통지를 기다리듯 작곡만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카뮤는 어째서 작곡가로 들이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카뮤는 그렇게 말하곤 비웃었다.

그 말에 코코아는 가볍게 숨을 삼켰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라, 일종의 협박이었다. 하지만 그와 눈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게, 낙오자와 백작. 처음으로 하나의 곡을 위해 엮이게 된 두 사람의 기묘한 시간이 시작되었다.